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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은 잠시 넣어둬도 돼, 친구 - 회사가 너무 보수적이라 생각된다면당신의 '안전멘탈' 직장생활을 위해 2020. 2. 26. 16:09
"00씨, 이러이러한 느낌으로 보고서 좀 써와줄래요?"
XX차장의 부탁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름 스스로 엘리트라고 생각했고, 팀내 에이스로 발돋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혼신을 다해서 작성하기로 결정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폰트 사이즈를 바꾸고, 색으로 강조를 주었다.
레이아웃은 대학 시절 발표하던 형식을 떠올리며 참조했다. 또 시키지도 않은, 추가로 필요할 것 같은 도표, 그래프 등까지 미리 삽입하여, 뿌듯하게 다시 내밀었다. 속으로는 이미 칭찬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뭐, 많은 칭찬들이 있지 않은가, "오, 00씨 역시 신세대인데?!", "와우 대단해!", "PPT 작성 실력이 매우 좋군!" 등 말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XX차장은 보고서를 받은 즉시 표정의 변화도 없이 빨간펜을 꺼내들었다."이부분은 띄어쓰기 하지 말고, 폰트 줄이고, 괄호 넣고, 들여쓰고, 그림 배치 바꾸고..." (부들부들)
그 순간만큼의 공기는 거의 논술학원을 방불케 했다. 고교시절 학원에 앉아서 '도입부, 첫번째 주장, 두번째 주장, 요약, ....'의 순서로 글을 1000자에 걸쳐 작성하고 선생님께 첨삭 받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그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내 보고서는 갈기갈기 난도질을 당했고, 바랐던 칭찬은 당연히도 없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정말 혼신을 다하여 만들고 기대를 했는데 말이다. 이 과정을 몇 번이나 거치니(몇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승인이 났다.
무슨 대단한 보고서도 아니었고, 그저 참고용 보고서인데, 왜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퇴근 길 내내 필자는 화가 나있었고, 답답했고, '이놈의 보수적인 회사', '쓸데없이 시간만 날리는 비효율적인 회사', '이런게 기업의 현실인가' 등, 주변인들에게 투덜댔다.위 상황은 필자가 입사 1년차 때 있었던 일이다. 이러한 보수적인 회사에서 아직도 2년차이지만, 조금은 당시의 상황이 이해가 간다. 보고서라는 것은 나의 상사, 그 위의 상사, 그 위의 위의 상사가 모두 보고 공감해야하는 서류이다.
그래서 한 눈에 들어와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게 한 눈에 들어오게 하기 위해, 기업마다 '보고서 특유의 공통성'이 생기는 것이다. 특정 글씨체, 폰트 크기, 표의 모양, 서식 등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생 초짜 신입'인 나는 그 형식을 지키지 않았고, 그러한 기본적인 틀도 갖추지 않으니 보고서로 대화할 준비가 안되었던 것이며, 이 규칙에 대해서 XX차장은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XX차장은 딱히 내가 좋아하는 편의 사람은 아니다(00차장, ㅁㅁ차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XX라고 하는 건, 내가 싫어한다는 것!). 그렇지만 그 부분은 내가 틀렸던 것이 맞으므로, 원망하지 않는다.
"직장은 각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뽑혀 모이는 곳이다. 내가 직접 사람을 뽑아서 모은 곳이 아니다 " - 김미경
얼마 전, 김미경 씨가 위와 같은 말을 하는 방송을 봤다. 무릎을 딱! 쳤다. 회사라는 공간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주체에 의해서 뽑혀서 모이는 곳이므로, 서로 안맞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싫다면, 내가 직접 가까운 주변인들을 뽑아서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라! 불가능하다면, 이 상황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것이 가장 빠르게 부정에서 긍정으로 돌아서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서 그곳에서만큼, 내 개성은 집어넣어두고, 욕심은 버린 뒤에 '가장 공통에 가까운' 행동을 해보자.
욕심을 버리고, 그냥 하던대로만 하자
그래서 '이런 답답한 회사!', '이런 특색없는, 보수적인 방식!'이라고 불평하기 보다는, 차라리 인정하고 편하게 생각해보자. '틀이 잡혀있는 편한 회사', '하던대로만 하면 되는 회사'라는 생각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이제는 또 XX상사가 당신을 불러 보고서 부탁을 한다. 그러면 이렇게 하면 된다. 과거 작성한 보고 자료를 열어보자.
그리고는 '복사-붙여넣기'를 시전하자. 놀랍게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히려 '우리 00씨 많이 늘었네~' 할 것이 분명하다.
믿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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